2023년을 보내며
2023년의 마지막 영업일 다음 날. 과음을 하고 압력밥솥 안에서 푹 곤 백숙마냥 침대에 담겨 익고 있었는데,
창 밖으로 펄펄 내리는 눈이 시선에 들어와 잠이 확 깼다.
숙취에 골골대며 창문을 열어젖혔는데 젊은 영혼들이 신나서 눈사람을 굴리고 있다.
포근하고 부끄럽고 평화로운 휴일 낮.
올해는 운 좋게도 크리스마스 연휴와 신년 연휴에 펄펄 내리는 눈을 볼 수 있었다.
그 누구에게는 하늘에서 내리는 똥가루이고 지긋지긋한 대상이겠지만,
희미한 하늘에서 조용히 떨어지는 눈을 평화로운 마음으로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입장이어서 하늘에 감사하다.
따로 은밀하게 적는 일기장이 있는데, 2023년의 일기를 둘러보니 참 화려하다.
갑작스러운 심박수 상승으로 애플워치가 띠링띠링 울린 날도 있었고,
과로로 인한 원인 모를 어지럼증에 퇴근길 갓길에 차를 대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던 때도 있었다.
코로나가 끝났다며 입안이 헐도록 신나게 놀아제낀 때도 많았고, 정신 못 차리고 플렉스를 일삼다 후회하기도 했다.
연애사업도, 자기계발도 들쑥날쑥한 그래프를 보여줬고, 친구들과도 좋은 날 나쁜 날 다 겪으며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아갔다.
2024년의 새 페이지도 여느 때와 같이 친한 친구들과 북적이는 자리에서 함께 열었다.
카운트다운 하기 10분 전 급하게 핸드폰으로 업노트를 열고 일기를 썼는데, 신년 소원이 몇 년째 그대로다.
매년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는 건지, 목표를 너무 크게 잡은 건지 가만 생각해 보니 전자에 가깝다.
2024년에는 좀 부지런하게 살자 이 맹구야.
갑자기 일이 생겨 밖으로 나왔는데, 밤새 내린 눈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아파트 관리인들은 이 황금 같은 연휴에 질퍽질퍽하고 미끄러운 눈 쪼가리들을 치우고 있다.
(아빠와 함께 깔깔거리며 행복하게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를 뒤로 하고)
'역시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게야' 껄껄껄 하며 신발을 털고 집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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