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석으로 인한 복통에서 담낭절제술 까지 후기

[챕터1. 방탕기]
대충 이런 삶을 꾸준히 살아가는 코리안의 담낭은 매우 피죤하다.
걸쭉한 지방과 타격감 터지는 알콜의 조합은 언제나 배신하지 않고
내 기분을 업시켜주지만,
상대적으로 발언 기회가 적은 담낭에게 그 누구도 "힘드냐"고 물어본 적 없으므로...
그렇게 살다 보면 건강검진 결과지에
"귀하의 담낭에 작은 돌이 생성되었습니다"
따위의 문구를 종종 접하게 된다.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 동공이 갈 곳을 잃으며
잠시 방탕했던 삶을 되돌아보며 멈칫 하지만,
"야! 너도?"
"야! 나두!"
"껄껄껄 우리 돌쟁이네 돌쟁이~~"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형제들과 몇 번의 대화를 거치면서
돌처럼 단단한 돌료애가 형성되어 조기치료를 방해하게 된다.
"그래 추척 관찰 하면 되지 추척 관찰~~ 껄껄껄~~"

[챕터2. 응급실]
그 결과는 이것이란 말이다 형제들아!!!!!!!!!!!!!!!!!
나와 비슷한 스텝을 밟을 형제들을 위해 그 경과를 시간 순으로 서술해 주겠다.
8월 10일(일), 월요병을 잊어보고자 마라샹궈에 밥을 싹싹 비벼먹고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일찍 잠에 들었다.
그렇게 기름기가 가득한 배를 움켜잡고 잠에 들었는데 새벽 3시에 불쾌한 복통을 겪으며 잠에서 깼다.
옆구리를 중심으로 배의 앞 뒤 측면을 누가 쥐어짜는 듯한 복통에 다시 잠에 들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자세를 바꿔봐도, 따듯한 물을 마셔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고 점점 심해졌다.
그 순간 뇌리에 스친 단어.. '요로결석'. 난 이 증상을 요로결석이라고 단정 지어버렸다.
수많은 아재들에게 들은 그 증상과 일치하는 느낌이었으므로...
빠르게 검색을 해보니 회사 근처에 요로결석 맛집이 있길래
5시에 운전대를 잡고 일단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할 때쯤 되니 하늘이 팽팽 돌고 정신이 없고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극도의 통증이 휘몰아치기 시작....
그대로 로비로 가서 청원경찰에게 119 불러달라고 사자후를 날렸다.
곧이어 구급차가 도착하자 부축을 받지도 않고 내 발로 착! 구급차에 뛰어올랐다.
그리고 생전 처음 타보는 구급차 안에서 초면인 구급대원에게
"진통제 좀 놔주세요 제발.." 하고 애원을 했다.
그 와중에 쌩쌩 달려 도착한 국립중앙의료원....
바로 의사가 달려오고, 진통제를 꽂고 통증이 잦아들자
CT와 엑스레이를 찍고 결과를 들어보니,
"신장결석이나 요로결석은 아니고요.. 담낭에 결석이 좀 있네요."
아뿔싸. 내가 그토록 흐린 눈으로 무시하며 지나쳤던 5년간의 담석과의 동행이 뇌리에 스쳤다.
'이거 그거구나.. 사람들이 담낭 잘라낸다는 그거...'

[챕터3. 수술]
그렇게 집 근처 대학병원에 외래를 잡았다가, 집 근처 담낭맛집 외래를 잡았다가,
집 근처 맛집에서 후다닥 진료를 받고 8월 14일(목)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입원을 하고, 수면 초음파내시경을 하고, 1~2시간 대기를 한 후
2007년 십자인대 재건수술 이후로 18년 만에 오르는 수술대...
내시경을 할 때 수면마취를 하고, 수술을 할 때 전신마취를 했는데,
스르르 잠드는 느낌이 좋아서 수면 내시경을 즐겼던 나도
그 순간은 왠지 즐기지 못했다.
수술이 끝나고 의료진이 내 어깨를 흔들며 나를 격렬하게(정말 그런 느낌이었다) 깨우는 통에 의식을 되찾았다.
전신마취의 여파로 머리는 어지럽고, 뱃속엔 가스가 가득 차있고, 구멍이 3개 뽕뽕 난 몸뚱이에는 도통 힘이 들어가지 않고, 절제된 담낭 부위와 구멍에서는 통증이 몰아치고... 정말 혼돈의 도가니탕이 시작됐다.
분명 수술 후기를 훑어봤을 때, 쉬운 수술이라 통증도 거의 없다고 하는 글들을 많이 봤었는데... 담낭이 남들의 3배 크기로 땡땡 부어서 온 나는 케이스가 달랐나 보다. 수술이 끝나고 한 6시간 동안은 정말 끙끙대며 악으로 버텼던 것 같다.

[챕터4. 회복]
수술 당일에는 물만 조금 마시고 최대한 고통을 잊으려 잠에 들려고 애썼다.
수술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몸통의 힘을 빼고 척추를 힘없이 늘어뜨린 상태에서 병원 침대와 한 몸이 되는 일은 매우 고통스럽다. 치료를 요하지 않은 부위가 다 같이 안 좋아지는 느낌...
이 때는 TV도, 아이패드도, 핸드폰도, 책도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빨리 잠들었으면 하는 생각뿐.

다음 날, 첫 식사가 나왔다. 슴슴한 저지방식 죽 식사가 나오는데, 형형색색의 싱싱한 재료들이 비좁은 병상 테이블에 제법 풍성하게 오른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 메뉴임에도 월요일부터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한 몸뚱이가 자동으로 움직여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동시에, 반대편에 또 다른 의식이 깨어나 바삐 움직이는 수저를 자제시킨다.
몸도 일으키기 힘든 상황에서 이걸 다 먹어치우면.. 그 후폭풍은 어떻게 견디려고 이눔자식아!!!


계속 그렇게 먹었다.
먹고자 하는 욕구와 그걸 말리는 이성이 조화롭게 싸우며(?) 적절한 식사량을 만들어 줬다.

그리고 서서히 주변에 TV도 눈에 들어오고, 쏟아진 휴대폰 메시지도 체크하게 됐으며, 밀리의 서재에서 읽고 싶었던 책도 골라 저녁에만 2권을 읽어치웠다.

요놈이 나를 그렇게 괴롭힌 돌덩이들이다...
내가 받은 담낭절제술은 이 돌덩이들만 제거하는 수술이 아닌, 담낭을 통째로 절제하는 수술이다.
담낭은 간에서 분비한 담즙을 보관해 뒀다가 기름진 음식이 들어오면 저장해 뒀던 담즙을 쭉~ 짜서 소화를 용이하게 만들어 주는 기관이다. 담낭이 없어졌으니, 당분간은 그 담즙이 타이밍 맞게 축적되기 어렵고 시도 때도 없이 흐르게 된다.
그래서 담낭절제술을 받은 환자들은 소화불량을 통증과 맞바꿔 얻게 되고, 시간이 흐르면 담관이 담낭의 역할을 서서히 대체하면서 상태가 호전된다고 한다. 그래도 원래 있던 싱싱한 장기를 100% 대체할 수는 없어서, 지방이 가득한 음식을 먹으면 여지없이 화장실로 달려가게 된다는 담낭절제 형제들의 후기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래 난 쓸개 빠진 남자다. 하자가 있는 남자란 말이다!!!!!



훌렁거리던 척추에 힘이 생기고, 배에 뽕뽕 난 구멍에서 출발하는 통증이 잦아들기 시작하면서 배변활동이 원활해졌다. 덕분에 식사량은 조금씩 늘어났고, 일반식까지 오게 됐다. (아니 근데 일반식이라고 바로 이렇게 매콤이들을 투하시키다니.... 감사합니다 영양사 누님)
[챕터5. 퇴원]
담낭절제술을 받은 사람들은 보통 3일 정도 입원을 한다. 개중에 하루 입원 후 바로 퇴원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조기에 병실에서 밀려나 집으로 복귀한 형제들이 상당한 불편을 겪었다는 후기가 많으므로 여유가 허락하는 한 3일에서 최대 1주까지는 푹 쉬도록 하자.
나는 급성으로 실려와서 그런지, 간 수치와 췌장 수치가 너무 높게 치솟아서 목요일에 수술하고 월요일에 퇴원하게 됐다. 집에 와서 고생하느니 병실에서 편하게 요양하고 복귀하는 게 낫지...
마지막 날에 나를 찝찝하게 괴롭혔던 피주머니를 빼니(피주머니를 뺄 때, 정말 다시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 난다) 회복수치가 퀀텀점프 했다.

수많은 피검사와 항생제 검사로 인해 멍으로 가득해진 오른팔,

그리고 모든 수술 환자들의 패시브 불편함을 담당하는 링거 바늘...

훌렁 벗어던지니 이보다 후련할 수 없다.
피주머니와 바늘을 제거하니 갑자기 60%에서 90% 회복한 느낌.
몸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그렇게 4박 5일간 지저분하게 사용했던 병실을 정리하고 짐을 챙겨 나왔다.
그리고 담당 선생님과(담당이라는 단어를 쓰니, 이제 내 뱃속에 없는 그 자식이 떠오른다..) 4일 뒤에 외래를 잡고 집으로 왔다. 외래 진료를 하면서 피주머니가 들어갔던 구멍의 실밥을 풀고 몇 개월치의 약을 받아오는 것으로 모든 스텝이 종료될 예정이다.
입원이 길어지는 바람에 병원비는 생각보다 많이 나왔지만, (약 450만 원)
보험이 있어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앞으로 건강한 식사와 적절한 운동을 병행하며 다시는 내 팔뚝에 수술바늘 꼽지 않게 해야지...
다시는 이 끔찍한 종류의 일은 겪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며,
며칠 뒤면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할 이 순간들을 글로 담자는 미션 수행을 마무리한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한국가곡 국제콩쿠르 수상자 음악회 @롯데콘서트홀 (0) | 2025.10.07 |
|---|---|
| 제28회 우리은행 미술대회 @ 킨텍스 (0) | 2025.09.22 |
| 2025년, 불같은 여름의 일상 (7) | 2025.07.14 |
| Backstreet Boys Millennium 2.0 발매! (2) | 2025.02.24 |
| 카발란 비노바리끄 (0) | 2024.11.28 |
| 아이폰 16 프로 쿠팡 맥세이프 충전기 구형 버전 판매? (14) | 2024.09.29 |
| [라이카 Q3] 공사판이 된 성북구 종암동 (3) | 2024.09.28 |
| 6호선 녹사평역 (4) | 2024.09.20 |
| 2023년을 보내며 (76) | 2024.01.01 |
| 너무 쉬운 내차팔기 헤이딜러 제로 100% 만족기 (0) | 2022.06.18 |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한국가곡 국제콩쿠르 수상자 음악회 @롯데콘서트홀
한국가곡 국제콩쿠르 수상자 음악회 @롯데콘서트홀
2025.10.07 -
제28회 우리은행 미술대회 @ 킨텍스
제28회 우리은행 미술대회 @ 킨텍스
2025.09.22 -
2025년, 불같은 여름의 일상
2025년, 불같은 여름의 일상
2025.07.14 -
Backstreet Boys Millennium 2.0 발매!
Backstreet Boys Millennium 2.0 발매!
2025.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