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하이저 ie600, 퀘스타일 M15C 지름

블루투스 이어폰이 대세가 된 지도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다.

엉뚱하게도 이런 선 없는 시대에 슬금슬금 날아든 유선이어폰 지름신은

호시탐탐 내 주머니를 노리고 있었다.

 

2025년 5월 31일 토요일.

여느 때와 같이 벼락치기로 화끈하게 준비한 회사 직무 시험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상암중학교의 교문을 나서는 그 순간,

서울 반대편 압구정에서 왠지 모르게 나를 향해 고사리 같은 손을 애처롭게 흔드는

ie600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DAC이 붙지 않아 힘없이 옅은 것만 같은 외침을 쫓아

빨간색 9711 버스를 타고 강남으로 달렸다.

 

그래, 나는 결심했다.

그를 우리 집으로 데려오고, 든든한 DAC까지 옆에 붙여주기로.

 

 

아마존에서 운 좋게 염가에 잡은 트리플파이 이후로 우리 집에 처음 들어온 유선 이어폰이다.

세예라자드 매장 구석에 앉아 ie900과 끝없이 저울질을 하다가 덥석 집고 계산을 했다.

 

퀘스타일 M15C와 함께 말이다.

사실 6월 2일부터 퀘스타일 할인 행사가 있어 몇 만 원 더 싸게 살 수 있을 것이 확실했지만,

나의 불같은 지름신은 단 한순간의 딜레이도 용납하지 못했다.

 

 

3.5mm 케이블과 M사이즈 실리콘 팁, 그리고 지르코늄으로 만들어진 묵직한 양쪽 유닛.

이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고스란히 다시 박스에 밀어 넣었다.

 

 

퀘스타일 M15C도 본체와 C to C 케이블만 꺼내고 다시 봉인.

뒤에 얘기할 거지만, 저 C to C는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친구다.

 

 

에어팟으로 쉽고 편하게 음악을 즐기는 방법이 있지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화끈한 음색에 마음을 더 쏟는 때가 불현듯 찾아왔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최대한 달래주는 아이템(르픽 DAC POCKET)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아이폰 뒷면에 맥세이프로 찰싹 붙는 밴드로 DAC를 꽉 잡아주는 구조인데, 상당히 평이 좋은 듯.

 

 

하지만 짧디 짧은 퀘스타일 순정 C to C 케이블을 뒤로 꺾어버리니,

짧게 꺾어진 그 힘이 단자를 과격하게 건드는지 자꾸 음악이 꺼진다.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니 다른 유저들이 나와 같은 초자연적인 불편함을 겪였다는 간증이 보였고

조금 더 긴, 다른 C to C 케이블을 구입해서 그 증상을 해결했다고 해서 나도 AME 케이블을 일단 주문했다.

 

 

이대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하니 조금 찝찝한 게,

이어폰 지른 후기인데, 이어폰 성능에 대한 얘기가 전무하다.

 

음. 그냥 좋다.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들으면 그냥 내가 제일 잘 나가는 느낌이 된다.

ie600 찾는 사람들이 생각할 그 단어들이 내 후기와 대부분 일치한다.

플랫+소문자 펀사운드, 급사 이슈에 대한 불안감, 편한 착용감, 나쁘지 않은 순정 케이블.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