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2017.05.03 20:54

집에서 충분히 걸어갈 수 있지만, 패시브 귀차니즘으로 인해 계속 방문을 미뤘던 곳. 아예 적당히 멀었으면 진작 가봤을 것 같은 곳.


 인터넷에서는 '승리 라멘집', '청담동 라멘', '아오리 라멘', '아오리의 행방불명' 등의 키워드로 찾을 수 있는 이곳은 번화가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파리가 슝슝 날아다니고 곰팡이 냄새가 솔솔 풍겨올 것 같지만, 사실 빅뱅 파워 + 압구정 라멘집들 파산의 호재를 든든히 안고 성업 중이다.


 입구에서 볼 때는 그냥 밑에 편의점 딸린 신림동 원룸 건물 이미지이지만, 한계단 한계단 올라갈 때마다 사방에서 꼬부랑 글씨들이 습격하면서 닛뽄 뽕이 슬슬 스며들다가 문을 열어젖히는 그 순간 '이랏샤이마세~~~~~'가 퍽~! 하고 날아든다.


​어? 이거 어디서 본 느낌인데? 하며 머릿속을 뒤적이면 10대 시절 나의 청춘과 함께했던 청운 독서실이 먼저 스쳐 지나가다가 이치란 라멘이 떠오른다. 혼밥족에게 특화된 1인용 독서실 테이블, 그리고 취향에 맞춘 주문을 위한 주문지. 히키코모리 파티를 준비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여기에요 여기라구요!!


2016/09/29 - [미식가] - 도쿄 라멘 이치란(이찌란, 一蘭)

(비슷한 시스템인 이치란 라멘 포스트 참조)



주문지를 작성하고 위의 벨을 누르면 커튼이 걷히고 직원이 주문지를 받아간다. 물은 저렇게 생수병으로 제공되는데, 추가하면 500원!


라멘에 면 추가만 했는데 이렇게 버터간장밥까지 딸려왔다. 언제 다시 가져갈까..? 했는데 갑자기 앞의 커튼이 홱! 걷히면서 '죄송해요 헤헤..' 하며 홱! 다시 가져갔다. 일본이었으면 커튼 뒤로 양해의 말을 구한 후, 커튼을 조심스레 걷고 머리가 무릎에 닿을 듯 폴더인사를 하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접시를 잡고 금방이라도 떨어뜨릴 듯 천천히 빼면서 입으로는 끊임없이 스미마셍 스미마셍을 연발하지 않았을까 싶다. 도쿄 이치란의 부담스러운 친절이 굉장히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난 과도한 친절이 싫단 말이다!!!

 이럴 수가, 맛도 이치란의 그것과 비슷하다. 면도, 국물도, 분위기도 다 다 다 다 비슷하다. 패시브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방문했다는 사실을 후회할 정도로 맛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심봉사의 눈이 번쩍 뜨이는 기가 막힌 맛도 아니다. 예술에 관심이 1도 없는 파리 여행객이 루브르의 모나리자 찰칵 찍고 돌아온 듯한 만족 불만족 equilibrium 상태(ㅋㅋ)


라멘을 사랑하는 그대, 한 번쯤 가보아도 좋아요.



11시 30분에 오픈하자마자 들어가서 대기 없이 바로 앉았지만, 나오다 보니 계단 밑으로 줄이 쭈욱~~... 블로그를 살짝 둘러보니 심한 날은 밖에도 줄이 늘어진다고 한다. 웃긴 것은 절반 이상은 빅뱅 승리 팬인 듯. 일본어도 재잘재잘 들려오는 신기방기한 청담동 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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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을 열어젖히는 그 순간 '이랏샤이마세~~~~~'가 퍽~! 하고 날아든다.

    2017.05.08 09:0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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